우리들 이야기

시작하게 된 이야기

CIDA의 시작

CIDA는 2013년 지역사회 컨퍼런스에서 처음 모이게 되었고, 가족 지원을 위한 작은 모임 (family support group)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보통의 뉴욕 이민자들이 겪고있는 언어/문화적 장벽으로 인한 여러가지 어려움들 – 예를들면, 사회가 제공하고 있는 다양한 서비스에 대한 정보 부족, 가족 지원 (family support)이나 권리 옹호 (advocacy) 문제 등 – 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족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으로, CIDA의 설립자인 배영서 박사와 몇몇 부모들은 지역의 여러 단체와 협력하여 특수교육 서비스에 관한 무료 워크샾과 장애인 가족들을 위한 행사들을 개최하고, 가족지원을 위한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준비 과정을 겪는동안, 많은 부모들이 가진 절박한 요구는 장애를 가진 자녀의 성인기 삶을 준비하는 것과 사회 통합의 기회를 확대하는 것임을 알게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장애인 가족 지원과 장애인의 인력 개발에 촛점을 맞춘 CIDA가 2016년에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이야기

통합은 힘입니다 (장애를 끌어안는 우리 지역 사회)

미주 한인장애청년들은 지역사회로 진출하고 통합하는 데 아직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한인 장애청년 3명과 그 형제자매들, 그리고 지역정치인들이 한 목소리로 장애인의 지역사회에서의 일자리와 통합의 기회를 넓히자는 뜻을 한 목소리로 영상을 통해 전합니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

한인장애학생들이 Self-Determination 을 통해 자신의 꿈과 미래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상입니다. 연방교육부 한인 학부모 지원센터인 Community Inclusion & Development Alliance (CIDA)의 Self-Determination 교육과정에 참가했던 참가자 중 한사람인 김다운 양이 교육과정을 통해 자신의 직업목표와 자신감을 찾아가는 여정을 설명하였습니다.

CIDA를 시작하게 된 이유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매우 명확합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자기주도적인 (self-determined) 생활을 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면서도 스스로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CIDA의 함께하는 공동체

17세 Devin Bae 가 전하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형에 대한 이야기 – 동생이 꿈꾸는 지역사회와 미래에 대한 소망

배영서 박사 (CIDA 설립자)의 강의 (한국어)

“선택과 기회들” – 자신의 아이들을 통해 배우게 된 이야기와 자기주도성에 대한 포럼 강연

이윤주 박사 (CUNY 교수)의 강의 (한국어)

“고정관념과 편견” – 장애를 가진 자신의 경험과,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낙인에 대한 이야기

CIDA 배영서 대표의 이야기

(연방교육부 특수교육국 웹사이트에 올린 글)

또 하나의 여정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자폐를 가진 우리아들 유진이가 학군에서 제공하는 데이프로그램에 가기 위해 통학 버스에 올랐다. 지난 20년간 유진이와 나는 매일 아침마다 현관앞에 앉아 이렇게 통학버스를 기다린다. 버스에 오르면 유진이는 그의 특유의 높고 밝은 목소리로 “바이 맘!” 하고는 한다. 이것은 우리가 매일 아침, 그날의 도전들과, 감정들과, 약속들 그리고 희망을 만나기 위해 하루를 시작하는 마치 예식과 같은 것이다.

올해 6월이면 유진이는 학군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완전히 졸업하게 된다. 유진이가 특수유아원을 들어간 그날 이후 우리가족이 시작한 여정을 생각할 때마다 감정이 북받쳐 오는 것은 어찌할수 가 없다. 그날, 나는 처참하게 울어대는 아이를 떼어 놓고 차안에 들어와 두시간을 울었다.

그날 이후, 학교라는 곳은 유진이와 나 두사람 모두에게 힘든 곳이었다. 유진이가 학교에서 알파벳 철자를 배울때, 나는 끝없는 특수교육 단어 준말을 공부했다. 이세상 다른 특수교육 엄마들처럼, 우리아이가 학교 공부로 울면, 나는 운전대에 앉아 훌쩍 대었고, 유진이가 학교에서 행복한 날이면 나도 이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때론, 자폐를 가진 아이를 데리고, 그아이의 소위 “비정상적 행동” 문제에 부딪혀가며, 특수교육이라는 세계에서 방향을 찾아 간다는 것이 너무도 잔혹한 임무라는 생각이 들었고, 단지 우리의 영어 발음 때문 아니라, 다른 이들이 우리가족의 어려움을 이해해 주지 않는 다고 느끼곤 했다.

그러나, 지난 20여년간 우리가족이 가진 가장 큰 걱정은 아직도 바뀐 것이 없다. 그것은 우리 유진이의 여정의 마지막 종착점에 도착하는 것 – 유진이가 독립적으로 지역사회에서 통합되어 살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다른 수많은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 모두가 공유하는 걱정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족은 우리 여정의 종착역으로 가기 위해 우리들이 탄 배의 돛을 여러번 바꾸었다. 이제 우리가족들에게 “정상이하” 라던가 “사회적으로 부적응” 등의 말들은 우리아들의 앞을 헤쳐나가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에 뒤로 해버린다. 그보다, “나는 자폐를 가진 사람입니다” 라고 자신감 있게 말할수 있는 젊은이의 놀라운 능력들과 긍적적인 가치들을, 우리는 가족으로서 좀더 확실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시스템 위주보다, 유진이가 모든 서비스 계획의 중심에 있는 것을 확실히 하여야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유진이를 계획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 주위를 바꾸는 일과 필요한 자원들을 찾는 데에 훨씬 더 효율적으로 변화 할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유진이의 지역사회의 삶에 대해서 완전히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족과 이 사회 사이에는, 유진이가 얼마나 “성공적”인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에 대한 평가, 그리고, 성공라는 것의 정의자체에 대한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자폐나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사회적 비용으로 측정하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사회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사회적인 자산이라는 미래적 시각으로 볼수 있는 좀더 나은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1975년 첫 연방장애인 교육법의 시행이후, 학교와 직장들이 장애인들에게 편의 제공할 수 역량을 있는 눈에 띠게 확장시키는 것을 보아왔다. 이러한 성과는 많은 부모들과 교육자들 그리고 이나라의 지도자들의 많은 희생과 노력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노력의 유산은 다음 세대의 가족들, 교육인들과 지도자들을 통해서 이어지고 있고, 우리가족이 우리의 여정을 계속해 나갈 수록 점점 커지고 있다.

앞으로 석달이라는 시간은 우리가족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시간이 될것이다. 솔찍히 유진이가 더이상 학교를 가지 않는 다는 것을 생각 할 때마다 불안해진다. 더이상 IEP 미팅이 없을 것이고, 유진이를 데리러 오는 통학버스도 없을 것이다.

유진이와 우리가족들은 이것이 우리 여정의 다음 단계의 시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진이가 우리배의 선장이 되어서 독립적이고 통합 된 지역사회에서의 삶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우리 가족의 방향을 지휘 할 것이다. 그때는 나는 울지 않는다. 대신, 나는 큰숨을 한번 들이쉬고, 가능성과 기회라는 또 하나의 흥분넘치는 바다를 향해 내자신을 준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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